역사

중화인민공화국 의외의 금기-6.25전쟁(1)

2011년 1월 중국의 주석 후진타오가 백악관을 방문했을때 당시엔 센세이션한 젊은 피아니스트였던 랑랑은 백악관 저녁 만찬에서 "나의 조국"이라는 노래를 쳤다가 논란의 여지를 일으켰다.

이 노래는 1956년 만들어진 혁명영화 "상감령"의 주제곡인데 상감령은 1952년 10월에서 11월 우리에겐 저격능선 및 삼각고지로 알려진 소위 상감령 전투를 배경으로 한 노래였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노래와 음식, 갖가지 측면에서 노골적으로 혹은 돌려서 자기들의 정치적 메시지를 남기는데 이것 역시 서서히 대두되는 미중갈등에서 중국의 노골적인 의도를 드러낸 게 아니냐란 반응이었다.

랑랑은 이에 대해 NPR(미국 전국 공영 라디오)인터뷰에서 적극적으로 항변했다. 그런 배경의 노래인지 몰랐고 상감령이란 영화도 이번에 처음 알게되었으며, 너무 오래된 사건이라고 응대했다. 중국의 여론은 82년 생에 청소년기를 미국에서 보낸 랑랑이 모를법도 하다는 반응이었다.

그 후 약 10년 방탄소년단이 밴플리트상을 수상하고 "(한미)두 나라가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을땐 상황이 정 반대로 흘러갔다. 중국 네티즌들은 BTS가 중국인들이 흘린 피를 무시했다며 반발했다.

10년 전과 2020년의 반응이 확실히 달라진 것은 아마 70년에 걸친 응축된 기억이 폭발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추측한다.

억압

중국 인터넷에서 625 전쟁을 대표하는 단어는 '냉궁冷宮에 유폐된'이란 단어다.(이런 면에서 미국Forgotten War과 중국의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은 비슷한 거 같다.)

중국에서 항미원조라 불리는 625전쟁은 1950년대 초까지만 해도 어느정도 언급되는 편이었다. 바로 위의 1956년 상감령부터 1951년 웨이 웨이의 산문인 "누가 가장 사랑스런 이인가" 등 여러 매체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자신의 감상과 느낌을 기록했다.

1960년 10월 인민일보는 1면 전체를 항미원조전쟁 10주년 기사로 가득채웠다. 10월 24일 평양에서 개최된 기념식에 김일성, 최용건, 김일, 홍명희, 박정애등 북한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참석했으며, 중국도 허룽을 대표로 한 대표단과, 차오샤오강 주북한 중국대사등 고위 인물도 참석하여 "미제국주의에 철저히 투쟁할 것"을 주장했다. 중국 주요 대도시에서는 미제국주의의 악랄함을 보여주는 영화 7편을 상영했다.

하지만 변화하는 국제 정세는 중국에서 625전쟁에 대한 영상이나 기록을 자제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1960년대 중소 국경분쟁(1964~1969) 등 악화되어 가는 중국과 소련의 갈등은 미국과 친하게 지내자는 분위기로 가고 있었고 1971년 키신저-저우언라이 회담, 1972년 닉슨-마오쩌둥 회담을 거쳐 1979년 미국과 드디어 수교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625전쟁은 우호적으로 가는 미국과 중국의 분위기에 걸림돌이 되는 터부가 되었고, 1954년 제1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통과된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전문에 항미원조라는 단어가 기록되어 있지만, 1975년 수정 헌법이후 그 글귀는 사라졌다.

개혁개방 이후에도 중국 현대사 부분에서 6.25전쟁에 대한 부분은 소략되었다. 단둥에 세워진 항미원조전쟁기념관이 1966년부터 1993년까지 무려 27년간 문을 닫았으며, 북중관계가 긴장국면에 들은 2014년에도 또 보수라는 이유로 폐쇄되었다가 2020년 다시 개장했다.

앞서 언급한 웨이 웨이의 산문 "누가 가장 사랑스런 이인가"도 중국 어문교과서에서 사라졌다가 2021년에 다시 등장했다.

1970년 항미원조전쟁 20주년 행사는 항미원조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부조작전赴朝作戰(조선으로 건너가 전쟁을 전개하다란 의미), 부조참전赴朝參戰(조선으로 건너가 전쟁에 참여하다란 의미)등 중립적이고 수동적인 단어로 바뀌었다. 대표단도 후베이성 혁명위원인 쩡쓰위로 10년 전 허룽에 비해 그격이 낮아졌다.

오히려 이 항미원조기념식에서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미제국주의에 대한 비판만큼 눈의 띄게 자주 언급되었다.

항미원조라는 말이 다시 등장한 것은 2000년 전쟁 50주년 기념 인민일보 기사에서부터 였다. 이때는 중국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반미 정서(1999년 나토의 주유고 중국대사관 오폭사건, 2004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 좌절) 등으로 민심을 달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

2010년 60주년 기념행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방중(2009년) 이후 미중의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좌담회 형식으로 간소하게 치뤄졌다.

중국 공산당 정부에서 6.25 전쟁은 토지개혁운동, 반혁명진압운동과 함께 건국 초 국가 기초를 세운 3대 운동으로 간주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전후 70년간 한국전쟁은 중국 공산당의 사상이나 이념부분에서 이상할 만큼 찾기가 힘든 존재였다. 항미원조라는 단어는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선을 타며 참전 군인 기억의 밑바닥에서 침잠하고 있었다.

중국의 공적 역사에서 6.25전쟁은 빠르게 잊혀져 갔다. 중공에서 있어서 중요한 부분은 2012년 오바마 정부가 '아시아 회귀'를 내세우기 전까지 공산당 정부가 비밀스럽게 관리하던 역사 중 하나였다.

출처: 중국인들의 한국전쟁-항미원조抗美援朝

4개의 댓글

12 일 전

我的祖国|郭兰英︱1956︱My Motherland【4K】【彩色版】https://youtu.be/RB3abtW9qrc?si=SbGg0iEBW2aAyf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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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일 전

배경이 한국전쟁이라서 우리나라와서 노래부르는데 이 땅이 아름답고 어쩌고, 여기 쳐들어오면 뭐 총을 쏘고... 우리나라가 중국이라 인식하는듯...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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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왜 니네 조국이야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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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일 전

좀 웃김 임진왜란 때는 먼길 고생스럽게와서 제대로 싸우지도 않더니

한국전쟁때는 겁나 열심히 싸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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