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중화인민공화국 의외의 금기-6.25전쟁(2)

제작을 하기 위한 노력

사실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 영상물 제작이 금지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편수가 중일전쟁, 국공내전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었다. 가장 활발히 제작했던 1950년대와 1960년대에도 각각 8편을 만들었으며, 1970년대에는 5편으로 30년에 걸쳐 21편만 제작되었다. 항일전쟁 관련 영상물이 한해(2024년 지금도) 수십편씩 만들어지는 것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은 수치다.

6.25전쟁은 영화제작자들에게 있어 매력적인 소재는 아니었다.

1980년 이후 마오쩌둥이 죽고 어느정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주요 인물들의 회고록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약진, 문혁으로 숙청당한 인물들이 마오 사망 이후 복권되면서 기억속에 묻어둔 기억들이 회고록이나 실록의 형태로 나온 것이다.

이런 회고록 등의 내용을 토대로 2000년 중국인민해방군 산하 81영화제작소와 중국 관영매체 CCTV는 각각 영화 "북위38도선"(원래 영화 이름을 항미원조로 할려다가 CCTV와 겹쳐서 바꿈)과 드라마 "항미원조"를 만들었지만 상영금지 조치를 당했다.

"북위38도선"은 이 시기에 회고록 중 양펑안(전쟁 당시 펑더화이의 군사비서)과 왕톈청(참전용사이자 주북한 중국군사령부의 참모)의 논픽션 "조선전쟁의 운전자"를 각색한 작품으로 이미 1995년부터 이 둘이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했을 정도로 오랜 시간 준비한 작품이었다.

"북위38도선"은 그 당시 제작비 3000만 위안의 거금과 당대의 스타들을 섭외했고, 스탈린, 아이젠하워, 맥아더 등 여러 인물들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등 10개국에서 배우들을 모집하고, 실감나는 전쟁 장면을 위해 군부대까지 동원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위38도선"은 세상에 나오는데 실패했는데(물론 촬영 영상들은 다른 항미원조 영화나 드라마에 짜집기 되어서 등장한다.) 무슨 내용인지는 2024년 지금도 모르지만 원전을 보면 한국전쟁에 대한 각종 민감한 내용들이 언급되어 있고, 이것이 중국 공산당 정부의 심기를 건들인 것을 추측된다. 그리고 파로호에서 괴멸당한 180사의 내용도 있기에 중국 정부에게 영광스러운 항미원조 투쟁사에 걸리적 거리는 면도 있을 것이다.

CCTV가 제작한 "항미원조"의 경우 당시 중국인민지원군 부사령관이자 병참부 사령관이던 홍쉐즈가 총고문을 맡았다. 그 당시 생존한 참전 용사 중 최고 계급과 권위를 가진 이었다. 거제 포로 수용소에서 있었던 프랜시스 도드 준장이 납치되는 장면을 넣기 위해 다롄에 거대한 수용소 세트장을 지었다.

1996년부터 제작준비를 한 이 작품은 상당한 비용이 투자되다 보니 예정된 방영 기간을 훌쩍 넘어 2002년 새해 방영될 예정이었지만, 방영직전 상영이 보류되었다. 2001년 4월 28일 중국 인터넷 신문 인민망에는 30부작 드라마 항미원조 제작 완료란 기사가 실렸다. 이 정치적인 의미가 가득한 드라마가 상영중지가 된 것에는 9.11 테러가 가장 큰 이유를 차지했고, 그 당시에 분노로 눈이 돌아간 미국을 자극하길 원치않은 중국정부는 상영금지 조치를 내렸다.

 

"그렇습니다. CCTV가 만드는 드라마는 정치를 담고 있습니다. 내가 "항미원조"라는 작품을 제작했을 때, 처음엔 외교부가 신중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미국인들도 조선전쟁을 기념하더란 말입니다. 조선전쟁으로 공산주의 확장을 저지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다시 외교부를 찾아가 따졌죠. 미국도 조선전쟁을 기념하는데 우리라고 왜 못하냐고요. 결국 만들라고 동의해줬어요. 그런데 정말 유감스럽게도 제작 기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요. 1년이 넘게 걸렸죠. 심사위원 모두 상영 가능하다는 의견을 냈는데 갑자기 9.11이 일어난 겁니다. 세계무역센터가 폭파되었는데 거기다 항미원조를 내보내는 건 적질치 않다, 이렇게 된 거죠. 당시 상황을 고려하느라 방영을 못했습니다."

2009년 전 CCTV사장 양웨이관이 남방인물주간南方人物周刊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 중에서

 

 

2006년 11월, 항미원조의 총고문인 홍쉐즈가 사망하자, 사람들은 그의 생전에 드라마가 나오지 않은 것에 안타까워 했다. 2008년 6.25전쟁에 참전한 노병들의 요청 속에 CCTV는 6.25전쟁 발발 60주년에 맞춰 이 드라마를 방영하고자 했지만, 중공중앙 외사영도소조는 같은 해에 열릴 상하이세계박람회를 이유로 무산시켰다.

2011년 초 인민해방군 고위 장성들이 방영 허가 해달라고 요청했고, 휴전 60주년이 되는 2013년에 다시 방영하고자 했지만 거부되었다.

이제는 각종 6.25전쟁과 관련된 주선율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 아직도 이 두 작품이 세상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2000년대 초의 중국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관점과 2020년대의 중국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다르지 않나 추측된다.

 

 

문제작 펑더화이원수彭德懷元帥

6.25 전쟁은 중국에서 각종 드라마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전면적으로 드러나긴 보단 간간이 언급되는 수준으로 나왔다. 2010년 나온 전쟁 참전 60주년 기념작 "마오안잉" 34부작도 인생풍파의 배경이나 시련 혹은 단련의 장면으로 밖에 안 나왔다. 한국전쟁은 이 작품에서 9화 밖에 나오지 않았으며, 내용 다수가 창작에 기반했다.

마오안잉을 주축으로 하다보니 펑더화이를 비롯한 중국인민지원군사령부의 인물들은 수동적으로 그려졌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중국인민지원군사령부의 모습을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보여준 첫 작품 중 하나였다.

2016년 나온 펑더화이원수라는 작품은 본격적으로 중국드라마에서 6.25전쟁을 보여주기 시작한 첫 TV드라마였다. 기존의 사극드라마들이 개인의 생애사를 전면에 내세우고 역사가 배경이었다면, 펑더화이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 그 자체였다.

작품은 전랑2와 같이 탄탄한 예산을 토대로 제작되진 않았지만, 군부 내 고위인사들의 관심을 받으며 제작되었다. 후난성 펑더화이 기념관 당조서기이자 관장인 리르팡과 중앙군위병참보장부TV예술센터 소속의 국가1급 시나리오 작가 마지홍, 81영화제작소 1급 감독 송예밍이 주축이 되어 기획한 작품은 시진핑, 중앙군위 부주석 판찬롱, 쉬치량, 중국인민해방군총병참부 정치위원 겸 상장 류위안에게서 서면 동의서를 받았다. 그리고 제9대 전국정협 부주석 겸 상장인 자오난치(한국계 중국인으로 한국식으로 조남기, 전쟁 당시 펑더화이의 한국어 통역사로 지원군 사령부에서 근무했으며, 드라마 제작에 있어 시진핑의 서면 동의서를 받는 큰 역할을 했다. 그 역시 이 드라마에서도 나온다.)와 류위안이 드라마의 총고문을 맡았다.

"펑더화이원수"는 평론가와 시청자 모두에게서 호평을 받았다. 2016년 5월 20일 CCTV 황금 시간대에 방영된 펑더화이원수는 전국 위성채널 최고 수신율을 기록하여 2016년 CCTV 황금시간대 드라마 최고 기록을 세웠다. 6월 19일 종영까지 약 4억명의 누적 시청자들이 감상했으며, 인터넷 조회수는 5억회를 넘겼다.

 

"한 시대 이래 무거운 혁명역사를 제재로 삼는 영상물의 창작자들은 일종의 잘못된 관념을 지녀왔다. 이런 작품은 쓰는 사람도 없고, 써도 찍는 사람이 없으며, 찍어도 방영하는 사람이 없고, 방영해도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장은 있으나 사상은 결여된 '통속드라마'로 벌떼처럼 몰려들었던 것이다. "펑더화이원수"의 성공적 방영은 시장의 수요나 관중의 입맛을 따라가는 것보다 인미들이 환영할 만한 고품격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이 드라마의 성공은 예술창작의 중심은 언제나 내용과 사상이며, 대중들은 사상성과 예술성을 갖춘 진실한 작품을 기다리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인민해방군 신문문예부 주임 천셴이

 

 

갈수록 고조되어가는 중국 민족주의(중화민족)과 애국주의의 열풍 속에서 "펑더화이원수"는 주선율 작품이 대중문화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듬해 개봉한 전랑2(2017)는 주선율 영화를 주류 문화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펑더화이원수"는 주선율 장르란 관점을 내려놓고도 보면 꽤 수작인 작품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펑더화이원수"가 중국인들의 가슴에 남았던 것은 이 작품이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36부작으로 갑자기 종영된 것이다.

 

 

"린뱌오, 4인방의 핍박 아래, 1974년 11월 29일, 펑더화이 원수는 베이징에서 서거했다. 향년 76세였다."

드라마 36화-국방장관 펑더화이가 국산 핵무기 개발을 재촉하는 편의 마지막 부분에서

 

 

원래 40부작으로 계획된 작품은 작품의 높은 기대치로 46부까지 제작되었지만 갑작스런 이유로 36부작에서 끝나고 말았다. 사실 작품 후반부의 내용은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이란 중화인민공화국 역사에서 가장 민감한 내용이지만, 때는 시진핑 집권기, 펑더화이와 각별한 아버지 시중쉰도 문혁에서 고초를 겪었고, 시진핑 본인도 하방하여 농사를 지었던 적도 있던 만큼 후반기 내용은 잘만하면 나올 수도 있었다. 그리고 작품 내에서 시중쉰 일가는 펑더화이 부부와 가족같은 관계로 그려진다.

무엇이 이 작품을 36부작으로 축소시켰을까? 나오지 못한 나머지 10편도 인터넷에 풀렸지만 곧이어 중국정부의 강력한 검열 앞에 차단되었고, 기존 38부와 마지막 46화 일부 만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마지막 후반 10편은 루산회의, 삼선건설, 문화대혁명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흑역사와 펑더화이의 고난이 담겨 있었다. 이 과감한 내용도 원래는 중국 공산당의 검열에서 허락을 받았다!

 

 

"40부작 드라마 연속극 "펑더화이원수"는 무산계급혁명가이자 군사가 펑더화이의 일생을 중심으로 한 중대 혁명역사 제재의 전기드라마이다. 펑더화이의 찬란한 고난의 일생을 두서로 삼아 중국 인민이 독립과 해방을 쟁취한 투쟁의 역사를 전면적으로 그려낸다. 여기에는 백단대전, 항미원조, 루산회의 등의 역사적 사실이 포함된다. 이로부터 다혈질이면서 강직하고 또 일편단심 백성을 위했던 펑대원수의 입체적인 형상을 관중의 눈앞에 펼쳐낼 것이다."

2014년 12월 23일 "장사문보長沙瞞報"의 펑더화이원수의 크랭크인 기념식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펑더화이원수 드라마의 해프닝은 부정적으로 가던 미중관계가 원인이 되어 생긴 것은 아니었다. 다만, 펑더화이는 루산회의에서 마오쩌둥을 비판했다가(사실은 완곡하여 좋게 둘러댔다.) 몰락했다. 아마 펑더화이원수 드라마가 급하게 종영한 것에는 드라마 속 루산회의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현 중국의 정치 상황을 패러디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에 급하게 끝낸 것으로 보인다.

또한 펑더화이를 띄우면 띄울수록 1950~1960년대 혼란스러운 중국 내부정치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펑더화이를 제거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 아니 마오쩌둥은 6.25전쟁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했을 지도 모른다. 홍쉐즈, 덩화 등 펑더화이와 동고동락한 장성들의 실각도 이에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960~70년대 중국 공산당 문건에 6.25 전쟁이 잘 언급이 안되는 것을 보더라도 미중 데탕트 이전부터 6.25전쟁에 대한 금기시가 내부에서 서서히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과 그 궤를 같이한 펑더화이를 몰락시키기 위해서는 그의 업적을 송두리째 부정해야 했으며, 그 업적 중에는 6.25전쟁이 포함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펑더화이가 정치적 복권 40년 뒤에야 대중매체로 민중들에게 되돌아오고, 드라마의 갑작스런 종영은 아직도 6.25전쟁은 중국 공산당에게 있어 금기시 되는 터부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중국인들의 한국전쟁-항미원조抗美援朝

 

4개의 댓글

진핑이 집권부터 노골적으로 들어내고 있지

0
12 일 전

제일 쩔었던 중공군 장군의 말로 그 자체가 공산당 비판이나 마찬가지니 ㅋㅋㅋ

1

향미원조교제

0
11 일 전

펑더화이 = 팽덕회 = 1953년 휴전협정서에 서명한 중공군 최고 사령관

동급의 서명자로는 김일성과 UN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 가 있음

 

그리고 60년대에 홍위병에게 조리돌림 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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