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책을 읽다가.

우리 앞에 20대 젊은이가 있다.

그를 A라고 부르기로 하자. 

 

A는 어려서 부모가 이혼한뒤 고1 때  "너 같은 새끼가 고등학교 나와서 뭐할래?"  라는 아버지 말에 학교를 자퇴했다.

집을 나와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찜질방 종업원부터 전단지 배포, 배달원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군 제대 후 정신적으로 의지하던 어머니가 숨지자 충격을 받고 우울감에 시달렸다.

 

'동반 자살 하실 분 도와주세요'

 

2019년 8월의 어느 새벽, A는 소셜 미디어에 글을 올렸다. 그가 올린 글을 보고 두 사람이 연락을 해왔다.

같은 날 오후 늦게 모인 세 사람은 필요한 도구들을 구입한 뒤 다음 날 오전 실행에 들어갔다.

이들의 극단적 시도는 다행히 미수에 그쳤다. 그중 한 사람이 '숨쉬기 힘들고 무서워서' 멈춘 뒤 다른 사람을 제지했다.

 

같은 해 12월 이들은 자살방조미수 혐의로 집행유예형을 선고 받았다.

울산지법 형사11부 재판장인 박주영 부장판사는 A 에게 책 선물과 함게 차비 20만 원을 건네며 말했다.

 

"재판부의 이 결정이 잘못된 판단이 아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어쩌면 이 마지막 당부는 재판부가 피고인 들에게 드리는

간곡한 탄원입니다. 당원(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듯 이젠 스스로 선처하고 아끼십시오."

 

판결문은 어떻게 돼 있을까. 30쪽에 이르는 판결문엔 세 사람이 카카오톡 단톡방(단체대화방)에서 나눈 대화가 담겨 있었다.

주된 주제는,슬프게도, 돈이었다.

 

"저도 어제 가불 땡기고 신불자 작업 대출까지 해서 올인 났네요ㅠ."

"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죄송하네요."

 

"어유 다 그렇죠, 돈 있으면 죽을 일 있나요 뭐. 다 돈 때문이죠."

"네 ㅠ."

"고생은요 무슨. 기쁜 마음으로 갑니다."

...(중략)...

"아침에 돈을 좀 썼는데 어찌어찌 6만 원을 만들었어요. 돈 구하기 진짜 힘드네요. 더 구해볼게요."

"힘들죠."

"도움이 못 돼서 죄송합니다. 제가 제일 미안해요. 멀리서 오시구. 차 준비해주시구ㅠ."

"예전에는 몰랐는데 요즘은 급할 때 3만 원 구하기도 힘들더라구요. 참 쪽팔리고 서럽더라구요ㅠ."

"맞아요 ㅋㅋ."

...(중략)...

"무슨 일 하세요? 저는 직업 없습니다."

"저도 백수 3개월 차 ㅋㅋ."

"너무빨리 오신 거 아니에요?"

"전 집이 없어서요 ㅋㅋ. 갈 데가 없어요. 방 보증금도 빼서 다 쓴 지 오래라.모텔만 지겹게 있었네요."

"ㅎ 전 덤프 몰아요."

"대단하시네요. 전 면허도 없는데."

"인생 하빠리 운전이죠 뭐."

"제가 좀 생각해봤는데, 혹시 부족할 거 같으면 제 핸드폰 파는거 어떠신가요. 알아보니까 20만 원 정도 중고값 받을 것 같네요."

 

- 2019고합 241 판결문 26,27쪽.

 

 

죽음에도 돈이 든다. 카톡 대화 하나하나가 개인적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자살임을 말해주고있다.

극단적 선택 앞에서 서로의 가난을 털어놓으며 동지애를 나누는 모습이 이토록 짠할 수가 없다.

판결문은 

 

"사회에서 철저히 고립된 피고인들이 전혀 일면식조차 없던 상태임에도 솔직하고 진지하게 나눈 마지막 대화가

자살에 대한 것이고, 사심 없는 순수한 생의 마지막 호의가 죽음의 동행이라는 점은 참으로 역설적"

 

이라고 했다.  판결문은 사회의 관심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지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믿음을 그에게 심어줄 수만 있다면,

그는 살아갈 수 있을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삶 역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한 개의 이야기인 이상,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그 이야기는 멈출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 판결문 30쪽. 

 

 

 

 

권석천 , 사람에 대한 예의  중.   

 

 

 

박주영 , 어떤 양형 이유     

4개의 댓글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좋은 말이다.

2
ric
2023.09.12

판결문 찾아봤는데 판사님 중에 시 좋아하시는 분이 있는 듯 하네 중간에 시 하나 인용하는거 보니...

그래서 판결문 표현이 좋은 것 같다.

 

이런 표현도 좋더라.

 

- 사람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우리 주위에 존재한다면, 우리 모두가 그곳으로 빨려 들지 않으리라는 장담 역시 할 수 없다

- 세상에서 고립된 채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잘 살고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3
2023.09.13

판결문 쓰면서 눈물 삼키셨을듯..

 

0
2023.09.18

맙소사....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12482 [자연] 약혐) 오싹기괴 냉혹한 쥐며느리의 세계... 8 식별불해 14 10 시간 전
12481 [역사] 삼국지 장각은 거대한 음모의 희생자였을까 1 식별불해 5 1 일 전
12480 [기타 지식] 뻔한 이야기지만 결국엔 맞는 이야기 7 Infinity 1 1 일 전
12479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매춘부만 노렸던 서퍽의 교살자 그그그그 1 1 일 전
12478 [기타 지식] 칵테일에 소금물을 넣어보세요, 살린 솔루션편 - 바텐더 개붕... 3 지나가는김개붕 5 2 일 전
12477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괴수 1부 10 Mtrap 6 2 일 전
12476 [기타 지식] 영원한 2등, 콩의 술 아르마냑 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이야기 2 지나가는김개붕 3 2 일 전
12475 [역사] 삼국지 황건적 두목 '장각'은 한낱 사이비 교주였을까 4 식별불해 9 3 일 전
12474 [기타 지식] 손해를 떠넘기는 사람들과 감당할 수 없는 사회 14 키룰루 25 3 일 전
12473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악취로 가득 찬 집, 그 안에 숨겨진 끔찍한 ... 5 그그그그 7 4 일 전
12472 [기타 지식] 더 디비전2 인기 TOP 4 빌드 소개 43 Mtrap 4 5 일 전
12471 [역사] 삼국지 황건의 난이 로마 제국 탓인 이유 13 식별불해 8 6 일 전
12470 [기타 지식] 보수동 쿨러? 보스턴 쿨러! 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이야기 4 지나가는김개붕 4 6 일 전
12469 [기타 지식] 필독. 수능만점자가 알려주는 JLPT N1 공부법 10 iqujzvfagwno 6 6 일 전
12468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드라마 덱스터의 모티브, 100명을 죽인 열쇄... 12 그그그그 13 6 일 전
12467 [역사] 한국사 관련 애니메이션 지도 시리즈 FishAndMaps 2 7 일 전
12466 [기묘한 이야기] 혈향(血香) 1 일간주간월간 1 7 일 전
12465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홍콩 연쇄 살인마, 항아리 살인마 4 그그그그 8 8 일 전
12464 [유머] 페미들이 여자들이 모두 페미라고 말하는 논리 18 은하수0909 15 9 일 전
12463 [기타 지식] 스압)게임 더 디비전 시리즈 헌터의 정체 15 Mtrap 8 10 일 전